ONLINE THEATRE

-MAUPASSANT

인터랙티브

​가상 전용 극장

관객분들이 실재하지 않는 극장에서의 연극은 과연 연극일까요?

영상 시대에서의 연극의 관객은 어떤 방법으로 극에 참여를 할 수 있을까요?

 

연극은 단순한 극의 관람만이 아니라 연극을 보러 가기 위한 과정 그리고 극장 공간의 경험 그리고 관객분들의 능동적인 관극을 통한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체험의 과정 속에서 온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 시대에 극장은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이렇게 가상의 극장을 만들어 하나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의 작품을 향유하는 게 아닌 관객분들이 극의 전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상호 교류적인 작품 상연을 통해 제한적이지만 현장에서 누렸던 선택적 관극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 관한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 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상 극장에 여러 형태의 이야기로 준비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극장이 관객분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상의 공간을 빌어 좀 더 다양한 연극의 이야기를 관객분들에게 색다르게 전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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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은 어머니와 친한 친구였던 구스타프 플로베르에게 모파상을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모파상이 11살일 때 모파상의 부모는 이혼하였고, 그 후 어머니와 지내던 모파상에게 플로베르는 작가로서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에 대하여 “그는 나의 제자이고 또한 나는 아들처럼 사랑한다.” 라고 한 바 있습니다.

졸라는 젊은 시절의 모파상에 대하여 “재미로 50마일의 노를 저을 수 있는 조수”라고 묘사한 바 있습니다. 모파상은 배와 강물에 대해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영향이 그의 자품의 자연 묘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모파상은 관료제를 매우 싫어했습니다만, 공무원으로서의 생활을 상당히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던 파리 시절의 초기, 그의 유명한 문란한 생활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모파상은 20대 초반에 매독에 걸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매독에 걸렸다는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그의 남동생이 어린 나이에 같은 병으로 사망한 점에 미루어 볼 때, 선천성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파상은 치료 받는 것을 거부하였고, 이는 신경쇠약으로 이어집니다. 

플로베르의 도제 기간동안 모파상은 “비계덩어리”를 발표하는데, 이는 그의 소설 중 최고작이라고 일컬어집니다.

〈비계덩어리〉가 발표되자마자 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880~90년의 10년 동안 모파상은 약 300편의 단편소설과 6편의 장편소설, 3권의 여행안내서, 유일한 시집, 그리고 약간의 잡문을 발표했습니다. 단편소설들은 여러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을 다룬 것, 노르망디 농민들을 다룬 것, 관료사회를 다룬 것, 센 강변의 생활을 다룬 것, 서로 다른 계층의 감정 문제를 다룬 것, 그리고 〈오를라 Le Horla〉(1887) 같은 후기 소설에서 환상을 다룬 것 등이 있습니다.

그 중 “조그마한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여자의 일생>은 모파상의 최고의 장편으로 꼽히는 소설입니다. 한 귀족 여성의 평범하고도 고난에 찬 일생을 그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조그마한 진실>로써 사랑과 미움의 근본문제와 대결시키는 작품입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파상은 수완 있는 노르망디 사업가였습니다. 모파상은 상당한 수입을 최대한 활용하여, 파리에서 여자들과 밀회할 때 이용하는 별관이 딸린 아파트를, 에트러타에 손님을 자주 초대하는 저택을, 리비에라에도 2채의 저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운동선수처럼 건장하고 건강해보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더 우울해졌습니다. 그의 글은 건강에 대한 한탄, 특히 눈병과 편두통을 한탄하는 말로 채워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여행을 시작했지만, 한때는 아무 걱정거리도 없이 즐거웠던 휴가가 정신상태 때문에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는 방랑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1892년 자살을 시도하고, 구속복에 묶여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그리고 43세 생일을 한달 앞두고 사망합니다. 

모파상의 작품은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욕망, 욕심, 야심으로 이끌어지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고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시도는 아예 없거나 잔혹한 실망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브루조아이든 아이러니한 운명에 짓눌려 희망 없이 저항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비극적 힘으로 극을 끌어갑니다. 그의 후반기 많은 작품들은 광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를 두고 그의 신경 쇠약이 그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들 역시 매우 균형잡히고 선명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 정신적인 쇠약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19세기 문학의 전문가 서울대학교 정예영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환상 문학과 모파상 작품에 관해 좀 더 알아보세요]

모파상의

일생과 작품세계

19세기

프랑스 문학과

​모파상

19세기 정신병과 예술에 관한 잡설

자신의 내면의 적들과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며, 기적적으로 (또는 그 덕분에?) 창작의 절정에 오르는 예술적 천재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미지이다. 천재와 광기의 인과관계는 소설, 영화 등의 매체, 언론, 그리고 유명 예술인들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 등을 통해 재생, 반복되어 왔고, 우리의 집단의식은 이를 당연한, 필연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다수의 과학자, 의학자,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인정되어 온 이 가설 – 예술적 천재와 광기는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 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을 해왔다. 가설에 대한 첫 체계적, 통계학적 접근은 1931년 랜지-아이크바움(Lange-Eichbaum)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에서 유명했던 800명 이상의 “천재”들을 인터뷰하였고, 그중 극소수 만이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이와는 반대 방향의 접근 방식으로 같은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는데, 즉 이들은 천재 예술가들의 작품을 분석하여 그 안에서 광기의 흔적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등이 그 표적이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더 과학적인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술가들, 특히 문학가들은 일반인보다 양극성 장애를 앓을 확률이 현저히 높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울증에서 조증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뇌를 홍수처럼 범람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 그리고 그 아이디어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설명한다. 즉, 조울증 환자는 일반인보다 (최소한 특정 시간대에) 훨씬 더 많은 양의, 그리고 더 복잡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되고, 따라서 예술적 천재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스웨덴의 과학자는 70만 명 이상의 청소년을 조사한 결과, 이 들 중 “매우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을 확률이 4배 이상이라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이와 같은 조울증 환자의 신경학적 현상에 기초한 이론은, 몇몇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케이 제이미슨,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신경생물학자 제임스 팰런 등은 양극성 환자들의 조증 상태 진입 시점의 뇌 활동을 측정하여, 위 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 남가주대학교의 엘린 색스 교수는 이와 연관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는데, 양극성 장애, 조현병 등 정신질환 환자들은 상호 상반되는 생각들의 충돌, 인지부조화에 대한 내성이 현저히 높고, 따라서 일반인들은 찾기 어려운 복합적인 관념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회의론자들은 위와 같은 연구들의 작은 샘플 사이즈, 방법론의 문제, 주관적/피상적인 해석을 지적한다.  광기 어린 천재의 낭만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집단의식에서 그 실체의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재생산, 소비되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초현실적이며 역설적인 변론을 펼쳤다: “나와 광인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스 : BIG THINK, “Is There a Link between Creativity and Mental Illness?” (https://bigthink.com/philip-perry/is-there-a-link-between-creativity-and-mental-illness)

SCIENTIFIC AMERICAN, “The Real Link Between Creativity and Mental Illness” (https://blogs.scientificamerican.com/beautiful-minds/the-real-link-between-creativity-and-mental-illness/)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약간의 광기도 없는 위대한 천재는 있을 수 없다.”

Ich weiß"

천사가 불러주었다는 슈만의 마지막 작품

1854년 슈만은 하나의 선율로 다섯 개의 변주부로 이루어진 유령 변주곡을 기보 한 후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 하고 다음날 라인강에 몸을 던진다. 그가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려 한 것은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이었을까?

슈만의 마지막 유언인 “나는 알고 있다” 는 많은 의문을 남긴다. 클라라의 헌신에 대한 말이라고도 하고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연정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슈만의 

유령 변주곡과

연극 ‘모파상에 대한 고백’ 에서 극중 인물 모파상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미지의 존재 오를라에 대한 증명의 사례로 독일의 음악가인 슈만의 유령변주곡과 “나는 알고 있다” 를 언급한다. 극중 인물 모파상은 오랜 시간 정신질환을 앓아왔던 슈만 또한 그의 광증은 단순한 정신착란이 아니라 그에게도 역시 오를라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며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변주곡을 통해 슈만이 알고 있는 것 또한 미지의 존재 ‘오를라’라는 확신을 말한다.

슈만이 알고 있다고 말한 것과 모파상이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지의 존재였을까? 아니면 망상의 결과였을까?

"나는 알고 있다 

(Ich weiß)"